[E·D칼럼] 원자력 산업, 무엇이 문제인가
[E·D칼럼] 원자력 산업,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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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7.1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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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 POSTECH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인증서 위조로 인한 사건들과 원전 가동 정지로 인한 전력난을 겪으면서, 다양한 진단과 처방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중에는 '원자력 마피아'라는 신조어로 대변되는 집단 이기주의와 폐쇄성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적정 전기요금 정책을 비롯한 전력수요와 공급 예측 및 준비의 실패에 큰 비중을 두는 주장도 있다.

모두 부분적으로 모두 일리가 있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원자력을 국가 에너지 공급의 한 축으로 유지하려면 보다 원자력 산업을 근본적인 부분부터 잘 이해한 상태에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원자력 산업의 특수성을 살펴봐야 한다.

첫째로, 원자력 산업은 매우 종합적이면서 복잡한 기술적 설계와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 위해 고도로 전문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원자력 발전소는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다. 작은 부품 하나까지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고에 대비해 필요한 안전 사항을 만족하도록 설계, 제작되는데 그칠 뿐 아니라 그 성능 역시 제대로 검증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처럼 큰 사고는 단 한 번 일어나더라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 손실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인 검증과 규제 제도를 마련해 기술적 오류나 실수가 하나라도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방지하여야 한다.

이같은 원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원자력 발전소는 매우 안전하다. 불가항력적인 고장이 일어나더라도 다중 안전 설계에 의해 자동으로 안전하게 정지되거나, 발전소 내로 사고의 영향이 제한되도록 제어할 수 있게 설계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인위적인 거짓이나 조작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다중 안전 개념이나 확률론적 안전성 분석 등에서도 결코 고려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만일의 경우 일어날 커다란 재앙을 고려할 때, 그 누구도 안전에 위협되는 거짓이나 조작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과연 오류나 실수가 아닌 거짓과 조작에 대한 원자력 기술자들의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거짓과 조작이 원자력 산업계에 만연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만일’의 사태가 불러일으킬 비극과 그 파급효과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기술자들이 말이다.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은 잘못된 윤리 의식이다. 근본적인 원칙은 망각한 채, 조직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눈앞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잘못된 충성 의식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적어도 원자력 기술이 가져다 줄 인류의 행복을 믿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술자라면, 안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에 근거한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담보로 하면서 조직의 단편적인 목표를 추구하려는 어떠한 결정도 단호히 거부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와 조직은 기술자들이 근본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하여 왔는지 다시 한 번 재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적 전기 수요를 적시에 충족하고,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원전을 건설한다는 명분에 급급해, 건설자나 기술자들로 하여금 안전에 필요한 원칙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부품들의 인증 시험에서 불합격으로 판정된 경우, 부품에 대한 재검증 시험을 실시하고 제대로 된 인증서가 나올 수 있도록 공정의 여유가 있었는지 점검하여야 한다. 만일 이러한 기간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공정일정이었다면, 여기에 참여한 기술자들은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인증서를 위조한 사람들의 책임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국가와 사회가 그리고 기술자들이 속한 조직이, 준엄한 윤리의식에 근거하여 안전원칙을 기술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원자력이 국가의 기본 에너지의 한 축이 되어 적절한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해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책임을 다할 수 있으려면, 이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은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절제된 기본 원칙에 충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역시 이러한 기술자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제공하고, 불필요한 공기 단축이나 무리한 공사 진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모든 전문적 기술의 개발과 적용은 기술자들의 몫이지만, 이들이 안전한 결정을 내리도록 할 수 있는 안전 문화 수립은 국가와 사회 모두가 같이 책임지고 나아가야하는 공동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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