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에너지산업의 규제개혁과 국제화가 시급한 이유
[특별기고] 에너지산업의 규제개혁과 국제화가 시급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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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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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 연세대학교 특임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갈 길 먼 에너지산업 선진화

우리 에너지정책을 장기 비전하에 재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기의 에너지산업이란 말도 들린다. 과도한 표현이고 기우에 불과한 걸까? 돌이켜 보면 그간 단기성과에 치중한 구호성 정책이 우리 에너지산업을 좌우했고, 정부가 바뀌면 에너지정책의 중심축이 바뀌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동북아협력이 그랬고, 녹색성장이 그랬다. 해외자원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에너지신산업에 올인하고 있다.

국정의 목표와 에너지상황 변화에 따른 정책의 유연성과 시의성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시대를 뛰어넘어 장기적 시각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정책방향도 있다. 에너지안보가 그렇고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과 국제협력의 확대도 이에 포함된다. 과거 급속한 경제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최우선적 에너지정책 목표였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중·일 3국은 에너지 분야의 협력보다 해외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에 더 치중했다. 미국의 지난 날 중동정책도 그 저변을 들여다보면 석유자원의 확보와 관련이 있다.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자국의 석유, 가스자원을 배경으로 전개된 측면이 많다. 이처럼 자원 제일주의 시대의 에너지 국제협력은 대부분 해외자원개발과 수입선 다변화를 위한 전략적 협력이었고, 따라서 대상국과 내용도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한편 우리의 에너지산업의 규제완화는 독점 공기업의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부분적인 개선에 불과했고, 경쟁시장 정착을 위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2001년 발전분할 등 굵직한 변화도 있었지만, 에너지산업은 사실상 정부의 가격규제, 시장개입, 경영규제 등 다양한 규제 하에 운영되고 있다.

특히 에너지부문간 진입규제와 신규사업자에 대한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석유제품 시장은 과점적 구조이고, 도시가스는 지역적 독점체제다. 근래 전력직거래 및 소규모사업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조치가 있었으나, 시장진입이 자유로운 소매경쟁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변화하는 세계 에너지시장 환경 하에서 우리 에너지산업의 선진화, 국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이에 부응하는 규제개혁과 시장경쟁 도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에너지수급 불안과 가격상승에 대한 우려가 우리 에너지산업의 체질 개선을 지연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 변화와 규제개혁의 시급성

하지만 이제 국내·외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국가 에너지시스템의 개혁이 시급해진 것이다. 신기후체제 출범에 따라 에너지분야의 세계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기술적 환경과 시장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제조업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주요국들은 '에너지기술 혁신이 살 길이다'는 기치 아래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의 에너지사업자뿐 아니라 인터넷·IT 기업, 금융업, 유통사업자들의 에너지신시장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변화에 부응하는 에너지부문의 혁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기존의 에너지 산업구조와 규제환경 하에서 세계시장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 정부는 기후변화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에너지신사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목표 하에 다각적인 육성대책을 내놓고 있다.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신산업에 총 42조원을 투자하고, 2018년부터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비율을 당초 계획보다 0.5%~1.0%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1MW 이하의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해서도 무제한 계통접속이 허용된다. 기업형 프로슈머의 발전 및 판매 겸업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활용 사업자의 전기판매사업 허용 등 에너지신사업자의 판매시장 진출이 활성화된다. 이는 기후변화대응 강화라는 지구적 의제에 기여하면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적극 개발하고 성장동력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신산업의 성공적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전제조건들이 있다. 신기술 개발과 수출산업화가 세계시장을 겨냥한 것인 만큼 우리 에너지산업의 개혁과 경쟁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전력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력 소매시장의 개방을 통한 경쟁촉진이 핵심적 요소다. 왜냐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다양한 사업자가 경쟁적으로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소비자가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는 시장환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 해외사례를 보면 전력, 가스부문의 소매자유화 이후 사업자간 상호진입으로 종합 비즈니스 모델이 늘어나고, 다양한 결합상품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에너지수급에 대한 합리적 가격신호가 제공되어야 한다. 가격을 매개로 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에너지효율 향상, 기술개발, 수요반응 사업이 성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탄소사회 구현을 위해서는 에너지세제 개편을 통해 환경비용 등 사회적비용을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에너지원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가격체계를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다.

민간부문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과 자율적 경영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는 주로 초기 시장개발과 투자위험 완화를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참여가 성공의 열쇄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와 같은 경쟁제한적인 사업구조와 경직적 규제요금 하에서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이처럼 에너지신산업 육성은 에너지시스템과 산업구조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장기과제로서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한 산업체질의 국제화가 전제되어야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최근 한 고위당국자는 범정부 차원의 규제완화를 통해 신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진출이 병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혹자는 이러한 변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저탄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와 국제협력 강화

지난해 9월 UN 정상회의는 2030년까지의 지구촌 공동의 의제로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채택했다. 국제사회가 함께 추진할 공동목표로 빈곤 종식, 자원의 접근성 보장, 지속가능한 성장 및 산업화 등 17개의 발전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에너지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항은 에너지 접근성 보장(목표 7)과 기후변화대응(목표 13)이다. 즉, 세계  곳곳의 에너지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체계적인 지원과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행동 강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경제적 위상에 맞게 지구촌 공동의 해결과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으며, 실제 우리나라에 대한 개도국의 에너지협력 수요와 기대감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재정지원, 인력양성, 기술이전 등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기술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구체적 협력사업을 발굴함으로써 실증사례를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과거 에너지분야 국제협력이 단순한 대외지원에 그치거나, 자원개발을 위한 전략적 협력이었다면 SDGs 하의 미래 국제협력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구적 개발과제에 대한 국제적 의무를 이행할 뿐 아니라 우리 에너지산업 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국제협력 대상지역의 여건에 따른 최적 에너지사업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향후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기회를 확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과정을 통해 우리 에너지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제화를 도모해야 한다.

전통에너지 산업의 국제화

우리의 에너지 현실을 감안할 때 에너지신산업뿐 아니라 석유, 가스 등 전통에너지의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한 시장의 주도권 확보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동북아 에너지협력 사업은 관련국간 거대한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에너지 공급안정과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원자재 물류와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우리나라를 동북아 석유 물류와 거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국정과제로 추진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이점, 정제시설, 항만조건 등 여러 측면에서 이 사업의 최적지로 평가하고 있으나, 지리적 조건이나 설비 측면의 장점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류, 가공, 거래, 금융 등의 유관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이를 위한 인프라 조성, 전문인력 양성이 중요하며, 외국기업, 트레이더의 자유로운 참여와 활발한 국제 석유거래를 위한 규제완화와 제도개선이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다.

가스트레이딩허브 구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스저장설비와 국가간 가스파이프라인 건설과 같은 설비기반 구축은 물론 시장 투명성 및 거래 유연성 확보를 위한 규제완화와 전문인력 및 시스템 확충 등 제도적 기반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일본은 지난 5월 G7 에너지장관회의에서 국제 LNG 허브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아시아 후보국 중에서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우리의 가스시장 및 규제환경을 국제적 기준에 부합되게 변화시키는 일이 시급해졌다

방향 맞다면 빠를수록 좋다

지금처럼 세계 에너지시장이 안정되고 저유가가 지속되는 시기가 신기후체제에 대비하고 에너지신산업의 발전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에너지산업을 둘러싼 각종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부문간, 부문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산업체질을 선진화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랜 기간 익숙해진 규제환경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고, 변화에 대한 기업과 시장의 적응기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부문의 혁신이 절실한 상황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방향이 맞다면 변화와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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