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송지면 땅끝
해남 송지면 땅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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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7.1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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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아가려고 하는 이상 길에는 끝이 없다
마지막이라고 알려진 곳은 새로운 시작점일 뿐이다

휴가철이 다가온다. 휴가는 지난 것을 마무리하고 새 것을 맞이하기 위한 기간이다. 한 번의 멈춤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새롭게 시작해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휴가의 방식들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게 요즘은 여행이다. 여행은 과정을 거쳐 끝에 이른다. 그 끝이 무엇인가? ‘길이 끝난 곳에서 이제 길이 시작한다’는 루카치의 말을 원용하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는 결국 새로운 시작에 마주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리라.

시작은, 개인에게도 민족에게도 중요하다.

개인의 시작은 생일이고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인간은 제 생일을 챙겨왔다. 민족에게 있어서 그 시작은 신화이다. 한민족의 시작은 단군신화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 단군신화는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기(古朝鮮記)의 첫머리에 나오는 고조선 건국신화의 일부이다. 고조선 건국신화의 일부가 단군신화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단군이 강조되면서부터이다.

단군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이므로 여기에 담겨져 있는 뜻을 알아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숫자를 통한 의미 파악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웅녀가 되는 과정에도 숫자가 등장한다. 환웅은 곰에게 100일 동안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근신하면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한다. 곰은 그대로 실천해서 삼칠일, 그러니까 21일 만에 여자[熊女]가 된다.

100일이 지나야 여자가 된다고 했는데 21일만에 여자가 돼 버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신화의 숫자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 또한 상징이다. 세 이레인 21일과 100일은 탄생에 관련된 숫자이다. 지금도 아이가 태어나면 ‘세 이레’와 ‘백일’에 잔치를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숫자들은 탄생(시작)을 의미한다.

단군신화는 탄생(시작)의 신화이다. 지상에서 웅녀라는 어머니가 탄생하고 그에 따라 단군이라는 아들이 태어난다.

우리는 ‘시작’을 위해 휴가 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그 시작을 직접 겪어볼 수 있는 곳은 없는가? 땅의 시작점에 서 보는 것은 어떤가?
이 땅의 남쪽 시작점인 전남 해남의 땅끝[土末].

북위 34°17’38”에 위치하는 땅끝은 전라남도의 남서쪽 끝 지점으로서 토말 혹은 갈두마을이라고도 불리운다. 남해와 서해의 경계 지점인 이곳은 함북 온성군 유원진(柔遠鎭)과 한반도에서 가장 긴 사선(斜線)으로 이어진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땅끝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온성까지 2,000리에 이르기 때문에 ‘3,000리 강산’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돼 있다.

땅끝을 놓고 어떤 이들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들은 대개 땅끝이란 말에서 끝을 연상해 그런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땅끝의 ‘끝’은 마지막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나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의미에서 땅끝은 시작이다.

실제 가 보면 땅끝은 그 모습부터가 끝이 아니다. 땅끝에는 바위로 된 사자봉(獅子峰)이 버티고 있다. 바다를 향해 치켜올려진 사자 머리를 기억시킨다. 시작을 알리는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릴 듯하다.

땅끝으로 가는 여행은 그곳에서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곳에서 다시 우리는 삶으로 출발한다.

길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나아가려고 하는 이상 길은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 사실을 우리는 땅끝에서 확인한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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